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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리(石湖里)

석호리의 모습

석호리(石湖里)는 원래 군북면 증걸리(增傑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석호리라 고쳐 현재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는 군북면 증걸리라 하여 45호가 살았으며, 1891년에는 34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1908년 군,면 행정구역 조정 때에 군북면을 둘로 나누어 군북일소면(郡北一所面)과 군북이소면(郡北二所面)으로 하였는데, 이때 증걸리는 이소면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의 전면적인 조정 때에 일소면과 이소면을 합하여 다시 군북면이라 불렀고 이때 석호리라 바뀌었다. 석호리라 부르게 된 것은 석결(石結) 마을의 석자와 도호(陶湖) 마을의 호자를 한자씩 취하여 석호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함티, 돌거리(석결), 아사골, 진걸(도호-옹기를 굽던 곳, 증걸-시루모양), 신촌 등이 있었으나 대청댐 수몰로 함티, 아사골, 신촌은 물에 잠겨 없어졌다. 석호리 증걸마을 입구에는 밀양손씨(密陽孫氏) 세거비가 서 있어 손씨 집성촌으로 대대로 거주했음을 알게 해주며 2007년말 현재 47호 96명이 살고 있다.

금강 남쪽인 도호리 함티 근처에 있는 백토산(이동통신탑 있음, 해발 171m)에는 석호리망루지가 있다. 이 망루는 금강의 건너편 막지리에서 건너오는 적을 경계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하며 일제시대에 신사터로 알려졌다.

조선말기 퇴락했던 청풍정(淸風亭)은 1996년 군이 복원해 대청호수가에 절경으로 꼽히고 있으며 부근에 있는 명월암과 함께 근대화시기에 개화사상가였던 김옥균과 명월이의 애틋한 사랑얘기가 전해온다.
명월암은 1884년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삼일천하로 끝을 맺고, 청풍정이란 정자에 내려와 세월을 보내자 함께 있던 기생 명월은 김옥균이 자신의 야망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것이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며 강물에 투신, 김옥균의 재기를 바랐다고 한다. 김옥균은 명월의 자신을 생각하는 이런 애정을 잊지 못하고, 바위에 명월암이란 이름을 새겨 명월이를 기렸다고 한다.

석호리와 그 주변은 경관이 빼어나 군북8경' 중 세 곳이나 포함되어 있다.
길이 2km, 너비 200m 넓은 잔디밭까지 갖춰진 호수로 낚시꾼들에게 각광을 받았다는 `용호소'가 8경중에 4경이요, 김옥균과 기생 명월이의 애틋한 전설과 함께 옥천이 청풍명월의 본고장임을 암시하는 청풍정이 있는 `명월암'이 5경, 옛 군북초 앞에서 본 금강의 일출은 `석호리 일출'이라 하여 7경으로 꼽았다. 현재는 명월암이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물에 잠겼다.

조선중기 증걸에 살았던 당대의 유학자 송명흠 선생은 ‘용호산수기’를 지어 석호리 주변의 절경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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