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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지리(莫只里)

막지리의 모습

막지리(莫只里)는 원래 안내면 막지리에 속해 있던 마을이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북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 보면 안내면 막지리라 하여 40호가 살았고, 1891년의 기록에는 46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내면에서 군북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막지리라 부르게 된 것은 이 마을이 강가에 위치하여 포전(浦田)이 많아 보리농사를 많이 하였기 때문에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이곳을 지나다 많은 보리밭을 보고 맥계(麥溪)라고 했다는 것. 이는 대대로 전해진 것으로, 막지리의 본래 지명은 맥계이며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 때 편리한대로 썼던 막지(莫只)라는 지명보다 본래 지명을 되찾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맥기, 장고개, 새말(새터) 등이 있으나 맥기는 대청댐 수몰로 원마을은 전부 물에 잠기고, 2007년말 현재 28호 47명이 살고 있다. 예전에 장현재, 혹은 장현동이라고 불렀다는 장고개. 안내면 답양리 주민들이나 이곳을 거쳐서 보은이나 청주로 가는 사람들이 걷는 길로는 장고개를 통해 가는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막지리에는 마을과 연접한 두개의 성터가 있다. 장고개에서 용호리로 넘어가는 산 주변에 있는 막지리산성(장고개)과 답양리와의 경계에 있는 답양리산성. 막지리산성과 답양리산성은 신라측에서 금강을 건너오는 적을 경계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보이며 특히 높은 산봉우리에 위치하고 있어 경계의 목적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고개마을에는 손대창 효자문이 있다. 손대창 효자는 부모를 모시기 위해 벼슬길에도 나서지 않았던 효자에 대해 군내 유림들이 그의 효행을 조정에 상소, 1881년(고종18년) 효자문을 세웠다.

옛날에 막지리의 금강줄기를 따라 길게 형성된 백사장. 안내면 장계리까지 길게 나있던 새하얀 모래밭은 4km가 넘었고 마을 앞으로는 1만평 넓이 소나무숲이 있었다. 금강물에는 갖가지 고기가 뛰어 놀고 천막 하나만 가지면 여름을 날 수 있었던 곳이 군북면 막지리다. 특히 석호리 백토산 정상에서 보는 막지리 앞 일출은 옛 선조들로부터 군북 8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장관을 이루었던 경관이다.

석호리 옛 군북초교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막지리 뒷산에서 해가 떠오를 때면 금강물에 비친 일출의 장관은 대청댐이 생기면서 이젠 영원히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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