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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리(疎亭里)

소정리의 모습

소정리(疎亭里)는 원래 군북면 소태동리(小太洞里)와 소정리로 나누어 현재에 이른다.

1739년 기록에는 군북면 소태동리라 하여 57호가 살았고, 1891년의 기록에는 소태동리라 하여 77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는데 이때 소태동리는 국원리(菊園里)와 소정리를 관할하였다. 1908년 군, 면의 행정구역 조정으로 군북면을 둘로 나누어 군북일소면(郡北一所面)과 군북이소면(郡北二所面)으로 하였는데, 이때 소태동리는 이소면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을 일제 조정하면서 일소면과 이소면을 합하여 다시 군북면으로 하면서, 이때 소태동리를 국원리와 소정리로 나누었다. 소정리에는 마을 골짜기가 작고 짧다는 소태골, 바깥마을, 안마을, 문박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원래 마을이름이 소정리라 불리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정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송정리라고 불리게 된 것은 마을에 예부터 좋은 소나무가 많이 났고, 정자가 있어서였다고 전한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 군락을 형성하며 자라는 멋진 소나무를 볼 수가 있는데 저마다 운치가 있다.

소정리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조선시대 연일정씨 문중의 정지하(鄭之河) 선생이 마을앞 금강(현 대청호)을 소강(疎江)이라 하고, 나루터 강가 절벽에 구모정(求慕亭)을 짓고 소일한데서 유래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본래 석호리 함티마을에 1935년 개교했던 군북초등학교는 대청댐 수몰 후 소정리로 이전했고, 1994년 2월28일 제56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폐교되었다. 2007년말 현재 61호 143명이 살고 있다.

1979년 대청댐이 건설되고 소정리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곳은 모두 물에 잠기고 주민들은 지금의 37호 국도가 있는 산 중턱으로 이주하게 됐다. 대청호 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소정리에서 비교적 작은 마을이었던 소태골은 안말과 바깥말의 대부분이 수몰된 후 그나마 수몰구역이 적어서 소정리의 중심이 되었다.

소정리마을의 중요한 전통인 당산제도 소태골에서 열린다. 300년 이상 지켜온 당산제는 일제시대에도 매년 정월대보름 하루를 앞두고 제를 올렸다. 원래 당산제는 안말의 영험한 소나무에서 제를 올렸는데 이제는 소나무 대신 마을을 지켜주는 할아버지돌 앞에서 제를 올린다.

또 소정리 국도변은 대청호와 어울린 풍광이 좋으며 특히 고리산으로 떨어지는 해를 찍기 위한 대청호의 석양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사진가들의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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