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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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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리(大亭里)

대정리의 모습

대정리(大亭里)는 원래 군북면 방하곡리(方下谷里)에 속해있던 마을로, 후에 항곡리(恒谷里)와 대정리로 나누어 지금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는 군북면 방하곡리라 하여 104호가 살았으며, 1891년 기록에 보면 128호가 살았는데 이때 항곡과 대정을 관할하였다. 1908년 군,면의 조정 때 군북면을 군북일소면(郡北一所面)과 군북이소면(郡北二所面)으로 방하곡리는 일소면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전면조정 때 일소면과 이소면을 합하여 다시 군북면이라 고치면서, 이때 방하곡리를 항곡리와 대정리로 나누었다.

대정리라 부르게 된 것은 자연마을들을 합쳐 새로운 마을을 만들면서 대촌(大村)의 대 자와 와정(瓦亭) 의 정 자를 합하여 대정리라 부르게 되었다.

대촌의 “방아실” 마을은 생긴 모양이 디딜방아 같이 세갈래로 되었다 하여 “방아실”이라 이름 지었는데, 한자로 쓰면서 방하곡리라 하였다가 제일 큰 마을이라 하여 큰대(大) 마을촌(村)자를 써서 대촌(大村)이라 하였다.

대정리의 자연마을은 방아실, 와정, 자구티(자가터), 거먹골, 세거리 등이 있고, 마늘이 많이 생산된다. 와정소류지는 1971년 축조되었다. 1935년 개교한 대정초등학교는 1993년 3월1일 증약초등학교 분교로 격하되었으며, 2007년말 현재 대촌에 50호 123명, 와정에 97호 233명이 살고 있다.

보통 방아실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대정리는 대전쪽에서는 ‘횟집’, ‘낚시터’ 등으로 유명하지만 옥천에서는 섬 같은 곳이었다. 증약리에서 항곡리로 넘는 고갯길이 포장되고 교통여건이 개선되면서 왕래가 편해졌으며 이전까지는 마달령을 넘어 세천으로 돌아오는 불편을 겪어야 했던 곳이다.

방아실이라고 알려졌으나 주민들은 방화실(方花)이라고 말한다. 방화실은 대전시와 경계를 이루는 마을뒷산의 이름이 화산(花山, 꽃산)이기 때문에 꽃화(花) 자를 써서 마을이름이 정해졌다가 방아실로 변천되었다.

1506년 문화류씨(文化柳氏)인 창봉 류근 공이 화산 아래 터를 잡고 마을을 세웠고 화산에 연유해서 방화(方花)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다. 문화류씨 집성촌으로, 마을 역사가 500년을 넘었다.

주민들은 대청댐에 잠긴 마을을 볼 수 고개에 1986년 ‘방화정(芳花亭)’이란 정자를 세웠다. 대정리 마을과 대전시 동구 주촌동 사이의 경계선상에 있는 꽃봉의 작은 두 봉우리중 서쪽의 봉우리에는 대정리산성이 있다. 이웃한 항곡리산성지의 보조역할을 하며 대정리 방아실나루터와 보은군 회남면의 어부동쪽을 경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의 와정소류지 위쪽에는 사기전골이 있는데 조선시대 때 사기를 굽던 가마터 흔적이 있는 곳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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