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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조들의 체취, 멋, 기품이 살아 숨쉬는 곳! 옥천향토문화의 창달과 계승 발전에 힘쓰겠습니다.

 옥천의마을

이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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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청리(江淸里)

강청리의 모습

강청리는 1739년 여지도서에는 이남면(利南面) 강청리라 하여 33호가 살았고, 1891년 신묘장적에는 39호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에 이남면(伊南面)에 소속 되었다가 1929년에 이원면(伊院面)에 소속 되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이원역이 강청리에 생기게 되자 교통이 좋아져 각급 면단위 기관인 면사무소, 파출소, 금융조합, 우체국 등이 이곳으로 모이고 1946년 병술년에 큰 수해로 인해 대흥리(건진, 이원, 강청)에 있던 장터가 침수되어 3년 뒤인 1949년에 시장이 옮겨오게 되니 새로운 문화, 경제의 중심마을이 되어 신흥리라 부르게 되었다.

이원장터는 우시장을 비롯하여 많은 거래 물량이 옥천을 능가하는 곳이었으나, 1960년대에 옥천읍에게 장날을 빼앗긴 후로 차차 쇠퇴하여 1980년대에는 완전히 폐장하고 몇몇 상점이 빈 장터를 지키고 있다. 신흥리라 불리는 이원역 광장에는 삼일운동 기념비가 서있어 일제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민족정기를 불태웠던 기록이 남아 있다.

강청리라 부르게 된 것은 1621년 강청리 사자바위골에 삼계서원(三溪書院)을 짓고 많은 유생들이 모여 공부할 때 골이 깊어 물이 많은데도 맑고 깨끗함이 이를 데 없음으로 물 강(江)자와 맑을 청(淸)자를 써서 강청리라 부르게 되었단다.

2007년말 현재 강청1리에 106호 251명, 강청2리에 55호 141명, 신흥1리에 169호 413명, 신흥2리에 196호 494명이 살고 있다. 신묘장적 이후 100여 년 동안에 가호수가 13배에 달하는 거대 마을로 바뀌었다.

자연마을로는 벌땀, 봉땀, 땀봉, 새터말, 보삭골, 도랫말, 오티실, 승골이 있고 신흥1리, 신흥2리, 신흥3리가 강청리에 속한다. 마을 서쪽으로 금산 골내미로 넘어가는 동냥골이 있고, 새터말, 도랫말, 서원골, 사자바위를 거쳐 대성산에 이르게 된다. 서원골에는 삼계서원 유지비가 있고 새터말 앞에는 애향심과 효를 강조한 충효비가 있고 이원역 광장에는 삼일운동 기념비가 있다.

신흥리에는 1920년 4월 1일 개교한 이원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자바위골에 1984년 강청소류지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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