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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금리(猫金里)

묘금리의 쇠종(점)골

묘금리(猫金里)는 원래 청산현 남면 저항리(猪項里)에 있던 마을이었으나 후에 양저리(兩猪里)와 분구하여 묘금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저항리는 양저리와 묘금리를 관할하던 마을로서 1739년의 기록이나 1891년의 기록에 보면 청산현 남면 저항리라 하여 108호가 다같이 살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일제정비 때 청산현이 없어지면서 옥천군에 소속되었으며, 남면을 청남면이라 고치고, 저항리를 양저리와 묘금리로 나누었다.
1929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청남면과 청서면을 한데 묶어 청성면으로 만들었으며 이 마을도 이에 속하게 되었다. 2007년말 현재 52호 102명이 살고 있다.

묘금리라 부르게 된 것은 묘동(猫洞)과 금점(金店), 태동(泰洞)을 합하면서 묘동의 묘(猫)자와 금점의 금(金)자를 한자씩 취하여 묘금리가 되었다.

묘동은 “괴골”로 한자화 하면서 “괴”를 “고양이”로 발음하여 고양이 묘(猫)자를 써서 묘동이라 이름 지어졌고, 금점은 “쇠종골”을 한자로 쓰면서 “쇠”를 쇠 금(金)으로 “종”을 가게 점(店)으로 써서 금점이라 하였는데(쇠점골이라하여 점(点)자를 썼다고도 함) 쇠종골은 옛날에 쇠그릇을 만들었기 때문에 “쇠종골”이라 부른다하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태동은 원래가 “방아골”이었는데 마을이 방아고 같이 생기었다하여 “방아골”이라 불렀는데 이 마을이 세 동네 중에서 제일 크다 하여 태동이라 이름 지었다.

청심도로(청성-심천)가 통과하는 쇠종골은 돌마당이란 옛날 심천장과 심천역에 기차를 타기 위하여 쉬어가던 넓적바위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으며, 태동에는 1970년대에 600여명이 넘는 학생이 공부하였던 묘금초등학교는 2000년 3월 1일 폐교되고 한 기업체가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괴골, 쇠종골, 방아골로 나뉘며, 금점(금점골), 메쥐골(동이), 무동곡(문동골), 방아골(용동), 쇠말봉, 삼두봉의 지명이 있다. 괴골은 여양진씨(麗陽陳氏)의 집성촌이었으며, 쇠종골과 방아골은 경주김씨(慶州金氏)와 밀양손씨(密陽孫氏)의 세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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