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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리(池水里)

지수리의 잔다리

지수리는 지내리(池內里)와 수동리(水洞里)를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739년에는 지내리에 67호, 수동리(물골)에 25호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고, 1891년 신묘장적에는 지내리의 일부가 종배리(從培里)로 나누어지면서 지내리에 53호 수동리에 31호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지내리와 수동리(구비, 평촌)가 합하여 지수리(池水里)가 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7년말 현재 지수1리에 44호 74명, 지수2리에 57호 141명이 살고 있다.

지내리는 못안을 한자화 한 이름으로 주민들은 지금도 이 마을을 모산이라 부르고 있다. 모산은 “못안”을 “몯∨안”→“모단” 으로 끊어 읽지 않고 연음법칙이 적용되어 “모산”이라 부르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마을유래비에는 지금 남평제 자리에 철을 다루는 어모소(於毛所)가 있어서 지내리 모산(毛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739년에 지내리라 불렀고 남평제가 생기기 약 200년 전인데 정말 소류지가 생길 것을 예측하고 못안이라 불렀을까? 소류지는 1930년도에 일제치하에서 만들어지고 남평제라 불렀으니 아마도 남평제(南坪堤) 이전에도 연못이 있었던 것을 재축조하고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지수리에는 이평저수지와 1966년 준공된 세교저수지도 있다.

이평(泥坪)은 진벌을 한자화 한 것으로 진벌은 진흙벌판, 진흙들판을 간략히 부르던 것으로 한자화하여 진흙니자와 들평자를 써서 이평이라 부르게 되었다.

세교(細橋)는 잔다리를 한자화 한 이름인데 세는 작다. 가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작은 다리가 있는 마을에서 유래된 듯 하다. 쇠보루(金峴)는 원래 청성면 합금리였으나 지수리에 편입되어 세가구가 살고 있다.

수동(水洞)은 물가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주민들이 안진벌이라 부르는 분치날은 보리밭에 똥을 뿌려 놓으면 꿩이 내려와 먹는 형국같이 생겼다 하여 분치날이라 부르고, 예로부터 진벌 앞산에 묘를 쓰면 왕비가 난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육영수여사의 외할머니가 이곳에 묻혀 왕비가 난다는 명당자리임을 증명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 마을에 큰물이 져, 마을 뒤를 지키고 있던 국사봉 아래까지 물이 차올라 그 물길을 따라 돛대가 산을 넘어 다녔다는 전설이 있다는 이야기와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마을뒷산 줄기를 옛 어르신들은 ‘말잔등’이라 불렀는데 말 등허리 같이 생겼다고 하여 그리 불렀다고 하며 또 산 어딘가에 ‘청돌(새파란 돌)’이라는 큰 돌이 있었는데 거기 새겨진 커다란 사람 발자국이 장수의 발자국이라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한다

수동주변에는 4가구가 살다가 폐촌 된 옥박골, 도종골, 구비골, 큰대종골, 작은대종골, 투수골, 어둠골, 은은정이(으능정이), 병뱅이골, 잔다리로 넘어가는 사리고개 등이 있고 진벌(질벌)주변에는 경보루, 가는골, 세봉날, 송아지골, 갈벌, 분무골, 사발봉, 단지구멍, 절터골, 분티날, 감동골, 골목재가 있고, 모산 주변에는 재발골, 소뿔봉, 큰달골, 안골과 마을 아래로 남평제(南坪堤)와 마당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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