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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리(五垈里)

오대리의 모습

오대리(五垈里)는 본래 오류티리(五柳峙里)와 유포리(柳浦里)를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이 마을이 1739년 기록에는 오류티리에 20호가, 유포리에 25호가 살았으며, 1830년대 옥천읍지에는 오류티리가 18호, 유포리에는 25호가 각각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후 1914년 행정구역 일제 조정때 두마을을 합쳐 오대리라 고쳐 현재에 이른다. 1990년 안남면이었던 행정구역이 주민편의를 위해 옥천읍으로 개편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옥천읍 오대리다.

오대리라 부르게 된 것은 마을들을 합치면서 오류티리의 맨 앞자인 오(五)자와 텃골 즉 대곡(垈谷)의 대(垈)자를 한 자씩 합하여 오대리라 칭하게 된 것이다.
오류티리는 우리말로 “오리티”라고 부르는데 도연명(陶淵明)의 오류(五柳)를 상징하여 오류티라 부르게 되었다.

유포는 우리말로 “버들개”이며 강가에 버드나무가 많기 때문에 버들개라 부르다가 한자화하면서 유포(柳浦)라 하였다. 포내(浦內)는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보내” 라 부르다가 한자로 포내(浦內)라 쓰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버들개(유포), 텃골(대곡), 오리티, 보내(포내), 용노골이 있었으나 대청댐 수몰로 오리티와 보내에 몇 집씩만 남고 그 외에는 전부 이주하고 물속에 잠겼다.

오대리는 대청댐 수몰 당시 100가구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이었으나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배가 없으면 걸어서 옥천읍을 나올 수 없는 육지 속의 섬이 돼서 대청호를 건너는 배는 마을의 필수 교통수단이다.

마을 주민들 중에는 창녕조씨(昌寧趙氏)와 한양조씨(漢陽曺氏)가 가장 많았고, 대청댐 수몰 후 동정리(東亭里)와 남곡리(南谷里), 상야리(上夜里) 등지로 이주했다. 마을에는 고인돌이 한 기 남아 있으며, 오류마을 앞에는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시고, 자신의 손가락까지 잘라 남편을 살리려 했던 조유원의 처 옥천육씨(沃川陸氏) 효열문이 있다.
2007년말 현재 12호에 21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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