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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리(長夜里)

장야리의 모습

장야리(長夜里)는 원래 군남면(郡南面) 야미리(夜味里)와 장천리(長川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두 마을을 합하여 장야리가 되어 옥천읍에 속하게 되었다.
1739년 기록을 보면 군남면 야미리라 하여 32호가 살았으며 이 때 야미리는 지금의 상야(上夜)와 장천(長川)을 관할하였다. 1891년의 기록에는 야미리에 13호, 장천리에 20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1910년 군남면과 읍내면을 합하여 군내면이라 하고, 이때 야미리와 장천리를 합하여 장야리라 하였다. 1917년 옥천면이 되고 1949년 옥천읍이 된 후, 지금까지 장야리는 이에 속해 있다.

장야리라 부르게 된 것은 일제강점 후 두 마을을 합하면서 장천리의 장 자와 야미리의 야 자를 한 자씩 취한 것이다. 장천은 “장내”의 옛마을 이름을 한자로 쓴 것인데 “긴내” 즉 하천이 길다는 뜻이다. 야미리는 “배미”의 옛 마을 이름을 한자로 쓰면서 발음대로 쓴 것이다.
자연마을로는 윗장내, 아랫장내, 숫골, 윗배미, 아랫배미, 배나무골 등이 있다.

상야리(배미)는 장야리 남쪽 고지대에 위치하여 위상(上)과 밤야(夜)를 써서 상야리라 하며 행정리동으로 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학이 날았다는 명당과 우물 얘기도 이 마을에 전하는 전설이다. 한 덕망있는 선비가 마을에 들어와 숙식 이외에는 돈을 받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마을 한 장소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선비가 죽은 다음 한 장소에 묻었는데 이후 후손들이 선비를 모셔가겠다고 묘소를 파니 그 속에서 백학이 날았다는 전설이다. 그 명당에서는 찬샘이 흘렀고, 가뭄에도 끊이지 않아 주민들이 항상 이용했고, 지금은 빨래터로 이용되고 있다.

장야리에는 우리 고장에서는 처음으로 그린아파트, 성진아파트 등 고층아파트가 자리를 잡았고, 장야주공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며, 옥천전씨(沃川全氏)와 전의이씨(全義李氏) 문중이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었다.

옥천읍 사람들이 등산 및 가벼운 산책코스로 주로 찾는 돌남산(石南山)은 관아의 남쪽에 있는 돌이 박힌 산이라는 이름 유래를 갖고 있는 산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7년말 현재 장야1리에 228호 648명, 장야2리에 145호 505명, 장야3리에 383호 1,256명, 장야4리에 599호 1,892명, 상야리에 49호 136명 등 모두 4,437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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