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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리(金龜里)

금구리의 모습

금구리(金龜里)는 원래 읍내면(邑內面) 가화리(嘉化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금구리가 되고 옥천읍에 소속되어 현재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을 보면 읍내면 가화리라 하여 59호가 살았는데, 이때의 가화리는 현재의 삼양리(三陽里)와 금구리를 관할하였다. 1891년의 기록에는 가화리라 하여 11호가 살았다. 1905년 경부철도가 개통하면서 옥천역이 현재의 금구리에 세워지자 교통이 편리해져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1910년 군남면과 읍내면을 합하여 군내면이라 하면서 이때 마을이름을 금구리라 하였다. 1917년 옥천면이 되고 1919년 군청사와 면청사가 삼양리와 금구리 23번지 옛 옥천읍사무소(삼산의원 자리)로 이전해 오자, 금구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49년 옥천읍으로 승격되자 금구리는 날로 발전하여 이제는 완전 도시화되었다.

금구리라 부르게 된 것은 현재의 신기리(新基里)와 경찰서 사이에 있는 동산의 모양이 거북이 엎드린 형상이고(금거북이가 진흙에 빠져있는 형국), 풍수설에 금구몰니(金龜沒泥)라 하여 금거북이가 진흙에 묻혀 있는 명당이란 뜻으로 금구리라 하였다.
금구리는 자연마을로 음지가화, 금구, 새터, 공심이골(공신동), 동묵거리 등이 있다.

2007년말 현재 가화1리에 375호 1,033명, 가화2리에 122호 338명, 가화3리에 459호 1,419명, 가화4리에 223호 680명, 금구1리에 235호 635명, 금구2리에 175호 428명, 금구3리에 146호 383명, 금구4리에 317호 887명, 신기1리에 365호 955명, 신기2리에 205호 548명 등 모두 10개 행정리에 7,305명이 살고 있다.

금구리는 옥천군 주요 기관이 옮겨온 신읍이 형성되면서 주요기관은 물론 금융기관, 각급 상가 등이 밀집된 옥천의 중심지이다. 행정 편의에 따라 금구리, 가화리, 신기리 등의 행정리 지명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 모두를 합해 금구리라고 통칭한다.

옥천읍 5일장은 구읍에 소재지가 있을 당시 2, 7일장이었던 것이 1960년대 장날을 옮겨오면서 5, 10일장으로 변경해 상업활동의 중심, 구실을 하고 있다.

옥천역은 현재의 옥천읍 시가지를 있게 한 교통시설이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개설과 함께 개통됐고, 옥천역사는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1957년 다시 신축했다. 주민생활과 밀접한 기관으로는 옥천경찰서와 우체국과 전화국, 통계청사무소 등이 있고, 옥천농협, 국민은행, 기업은행, 옥천신용협동조합, 한성저축은행, 옥천새마을금고 등 각급 금융기관이 있다.

근대화시기 시내권 중심도로를 연결했던 경찰서 앞 옥천교는 1917년, 통계사무소와 동아서적을 잇는 삼금교는 1926년에 개설한 교량이며, 1998년에 2년제 공립전문대학으로 옥천전문대학이 개교했다 2008년 충북도립대학(같은 위치에 있던 옥천공업고등학교는 1977년 개교해 1998년 2월말에 폐교했다.)으로 학교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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