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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리(大川里)

대천리의 모습

대천리(大川里)는 원래 군남면(郡南面) 대야동리(大也洞里)와 맹동리(孟洞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두 마을을 합하여 대천리로 하고 옥천읍에 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는 군남면 대야동리에 45호가 살았고, 1891년의 기록에는 대야동리에 32호, 맹동리에 8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1910년 군남면과 읍내면이 합하여 군내면이 되면서 이때 대야동리와 맹동리가 합쳐져 대천리가 되었다. 1917년 옥천면이 되고 1949년 옥천읍이 된 후 현재까지 대천리는 이에 속해 있다. 대천리라 부르게 된 것은 “대골”이란 옛 이름을 한자로 쓰면서 발음대로 한 것이다.

대골이란 골이 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골이 크면 옛말에서는 보통 “한골” “황골” “대골”이라 부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솔미(송산, 솔산), 대골(대야-넓은 들판), 말라깽이, 응천, 물방아거리 등 다섯개 마을로 되어 있다.

대천리의 또다른 자연마을인 응천리는 예부터 마을 앞 국도변에 흐르는 금구천에 물레방아가 있어 물방아거리라고 불렀고, 근로자임대아파트인 청솔아파트가 건축돼 거주인구가 늘어났다.

대천리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2002년 고속철도 공사를 위한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 낮은 구릉지 주변에서 신석기시대 집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탄소연대 측정 결과 신석기 후기인 기원전 3,000년에서 3,500년 사이의 유적으로 판명된 신석기시대 집터 유적에서는 쌀, 보리, 밀 등 다섯가지 곡물이 발견돼 이미 5천년 전인 신석기시대부터 수렵과 어로뿐만 아니라 오곡농사를 시작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신라, 백제가 패권을 놓고 다툰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 김무력 장군이 이끄는 신라군이 대골 위쪽 마성산 기슭에 진을 쳤다는 얘기가 전하고, 사회복지시설인 영실애육원이 있다. 2007년말 현재 대천1리에 139호 438명, 대천2리에 70호 156명, 응천리에 197호 485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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